이현호 / 국제여관

2015. 9. 10. 19:59 from something

국제여관 

-이현호

 

 

 

너를 경經처럼 읽던 밤이었지

낯선 문법에 길 잃고 자주 행간에 발이 빠져

시든 줄기 같은 문맥을 잡고, 점자인양 널 더듬거렸지

창틈으로 난입하는 빗소리에 글자들이 번져

점점 눅눅해지는 어둠을 헤치며, 너를 읽어내려갔지

폐허가 된 역사驛舍에서 너의 그림자,

검은 장미 숲으로 떠나는 열차를 기다리며

산문적이었던 삶의 비문非文들을 생각했지

레코드판같이 돌아가는 밤하늘 아래

안개는 가로등 불빛을 한 뼘 비껴 흐르고

역사歷史가 되감겨 와, 가물거리는 한 구절 경을

늘어진 테이프처럼 읊조렸지

마지막 페이지를 새긴 열차는 끝내 오지 않고

어둠의 깊이만큼 經은 또 한 번 두꺼워지는

 

 

2007 <현대시> 신인상 수상작

[출처] 이현호/국제여관|작성자 여성민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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